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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너무 먼 그대 북녘땅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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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9 09:57 | 최종 업데이트 14.01.29 09:57 | 정현중(wjdguswnd) 출처 : 오마이뉴스 | ||||||||||||||||||||||||||||||||||||||||||||||||
북녘땅을 코 앞에서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항상 매체에서만 들어오던 북한을 내 눈으로 볼 것이란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마치 1950년대 6·25 전쟁을 경험하러가는 듯 짜릿했다. 아니 사실 그런 역사적 기록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느 고궁이나 새로 복원한 남대문보다는 정말 살아있는 역사가 내 눈 앞에 있을 것이란 생각에, 내 심장은 두근거리다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저절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취하는 듯 손이 가슴팍에 올라왔다. 이럴 때만큼은 나도 애국시민! 지난 26일 일요일, 열차를 타고 임진각에 가기로 했다. 이곳에 가려면 문산역이나 파주역에서 오전 11시, 오후 3시, 오후 6시에만 이용이 가능해 시간에 맞춰서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또 열차는 지하철과 따로 운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기차 값을 내야했다.
백구를 뒤로하고 바깥으로 나오면, 타임머신을 탄 듯 적응이 되지 않는다. 산이 뻥 뚫려있고, 따뜻하게 입고 온 것이 무색할 만큼 뼈가 시려웠다. 몸과 마음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몸이 추웠던 것 보다는 마음이 더 추웠다. 실제로 실향민들이 찾아오고 있었고,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내 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했다. 마치 상처가 많은 아이처럼,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듯. 천천히 자기를 마음속으로 이해하며 다가오라는 듯 아픔을 내게 전하는 것 같았다. 입구를 지나면 종합운동장만한 넓디넓은 주차장과 놀이공원이 있다. 찾아온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 하지만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놀이공원은 닫혀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픔의 이 장소는 언젠가, 웃는 얼굴로 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구나 싶었다.
안내도를 따라 들어가면 투어버스가 따로 운행되고 직접 발로 돌아다니며 관광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지도를 자세하게 표시해 주었다. 초행길이지만, 우리들의 민족간의 마음은 서로 초행길이 아닌 다시돌아가고 싶어하는 고향과도 같은 길이란 마음이 들었다.
안내도를 따라 깊숙히 들어가면 DMZ와 철조망 사이로 깃발이 많이 매달려 있다. 철조망으로 드리워진 어두운 과거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염원을 남기고 갔다. 차갑고 아픈 분단마저도 염원과 희망으로 채워진 듯이 자리에서 만큼은 따뜻해졌다. 아프지만 따뜻한 풍경.
언덕으로 올라가보면, 수백개의 바람개비들과 함께 돌상이 나를 맞이한다. 언덕은 굉장히 텅 비어 있었다. 전쟁의 아픔의 결과는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마음을 텅 비게 해 준다. 산 지방까지 사방으로 300m이상되는 빈 언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이 바람개비에 실려나가듯 분위기에 매료된다.
철로는 달리고 싶다! 실제 달리던 열차를 모델로 다시 제작해 놓은, 이제는 멈춰버린 열차를 보고 있으면 나도모르게 통일을 외치고 싶을 정도로 탄식이 나온다. 이제는 북한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세상이 되고 싶은 바램과 역사속의 아픔을 이 열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평화를 외치는 종, 지하벙커시설을 소개해주는 지하벙커 박물관도 있었다. 그러나 지하벙커 시설은 5시까지 밖에 이용이 불가해 그전에 들어가서 구경해야한다. 이외에도 전체적인 배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망원경이 편의시설 맨 위층에 존재해 직접 북녘땅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망원경으로 직접 멀리있는 북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손바닥 한 뼘차이인 이 거리가 마음에 있어 물과 기름처럼 떨어져있다는 사실이, 잡고 싶어도 못잡는 이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짠하게 했다.
편의시설에는 사진전도 존재해 직접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과 여러 가지 실향민들의 역사 사진도 같이 존재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아뒀다. 열차 시간에 맞추느라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은 사진전에서 구경해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전통음식점들도 존재하고, 카페 또한 한자리에 모여있어 식사 걱정이나 후식 걱정은 끝! 편의시설을 역사시설 외에 멀리 두고 굉장히 크게지어서 도시락 싸 올 필요가 전혀 없다. 집에 오는 길목은 처음 느껴진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따스함은 고마움이었다. 역사가 잊혀져가는 요즘에, 나에게 임진각 스스로가 자신과 역사를 잊지 말라고 외치는 아름다운 외침이었다. 자신은 차가운 철조망에 갖혔지만, 우리 후손에게는 따뜻함만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부모님 같았다. 하지만 임진각 스스로가 전해주고 싶어하는 외침은, 자신 스스로의 메아리처럼만 들려오는 부재중 전화와도 같아 보였다. 한 번쯤은 부재중 전화에도 전화를 걸어주는 따뜻함은 우리 모두가 따뜻해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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