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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zine

한국 증시 오를 대로 올랐나?

기업이 자사주를 파는 이유

최근 상장사 기업들이 자사주를 처분하는 일이 늘고 있다. 주가가 오를 만큼 올랐다는 판단에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모처럼의 상승 분위기에 사측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과연 한국 증시의 상승 분위기는 끝난 것인가?
 

최근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처분은 크게 늘어난 반면 취득은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각 상장사들이 올해 자기회사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비싼 값에 팔아 유동성 마련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가증권·코스닥기업들이 지난해 자사주 처분 결정을 내린 건수는 209건에 달해 2008년에 비해 96건(84.9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코스닥 상장기업이 자사주 처분 결정을 내린 경우가 132건으로 더 많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처분 결정은 7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던 코스닥기업들이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내다 팔아 유동성과 운영자금 등 마련에 대거 나섰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자사주 취득 결정은 크게 줄어들었다. 상장기업들이 주주 권익을 보호하거나 주가 부양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기업의 자사주 취득 결정 건수는 60건으로 2008년 같은 기간의 245건에 비해 185건(75.51%)이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가상승으로 주가 안정 목적이 달성되었고,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사주 처분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상장사 710개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8년에 비해 자사주 보유주식 수가 16.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상승으로 평가이익도 급증했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주가가 급증한 측면도 있지만, 주가가 낮을 때 취득하는 자사주의 특성상 취득가액이 낮아서 주가가 조금만 증가해도 평가이익은 급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평가이익은 2008년에 비해 157% 증가한 19조 5000억 원이다.

자사주 보유금액 상위사로는 삼성전자가 16조 8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포스코가 6조 3000억 원, 현대중공업이 2조 7000억 원, 현대자동차가 1조 5000억 원, SK텔레콤이 1조 4000억 원이었다. 평가이익도 삼성전자가 8조 6000억 원으로 가장 컸고, 포스코 4조 3000억 원, 현대중공업 1조 3000억 원, 두산중공업 1조 1000억 원, 현대자동차 7000억 원 순이었다.

이처럼 자사주를 처분하는 이유는 유동성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것 이외에도 다양하다.

최근 자사주를 처분한 코스피 상장사 중 S&T중공업, 한솔케미칼, 영원무역 등은 임직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자사주를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고 현대상선은 사내 근로복지기금으로 출연하기 위해 자사주를 현금화하겠다고 공시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리노셀, 에스지어드밴텍, 파이컴 등이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해 자사주를 팔겠다고 결정했고 에스티큐브와 세실은 신규 사업을 위한 자금이 필요해 자사주를 처분키로 했다. 또한 에스씨디가 금융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자사주 처분에 나섰고 국순당, 가온미디어, 신화인터텍 등은 임직원 상여금 지급을 위해 보유 자사주를 팔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은 통상 경영권 방어나 투자 수단으로 주가가 쌀 때 자사주를 사들인다”며 “최근 주가가 상당 폭 오른 만큼 일단 처분해 현금 확보나 투자자금 마련에 쓰겠다는 것”이라며 주가가 급격히 오른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단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사주 처분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사주 매도, 기업 순익 전망의 지표인가?

이러한 자사주 매도 급증이 향후 국내 증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내부자 매도 증가에 대해 향후 증시에 암운을 끼얹는 신호라는 주장과 랠리 기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별다른 의미 없는 매도일 뿐이라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자사주 매도 흐름에 주목해야 할 점은 증시가 단기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시작할 때 내부자 매도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공시된 것 이외에도 실제 내부자 매도 규모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부자 매도 증가는 비관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경영진들이야말로 기업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사 주가가 비싼지 싼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개인용 컴퓨터 회사인 델컴퓨터 경우 과거 자사주가 싸다고 생각할 때 사고 비싸다고 판단할 때 팔았다. 델 CEO 외에도 MS의 발머 사장도 주가가 오를 때 MS 주식을 거의 10억 주 가량 매도해 관심을 끈 바 있다.

이처럼 내부자 매도 현황은 증시의 향방을 아는 의미 있는 지표로 사용돼 왔다. 톰슨 파이낸셜의 내부자 매매 리서치에 따르면 내부자 매수에 비해 매도가 큰 폭의 비율로 뛰었던 과거 14번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어지는 6개월간 S&P500 지수는 평균 6% 하락했고 이어 1년간에는 9% 떨어졌고 밝혔다.

2000년부터 경영 관련 사항을 특정 사람들에게만 미리 밝힐 수 없도록 바뀌었다는 점도 내부자 매매 현황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전에는 경영진들이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과 만나 기업 내부 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으나 공시 제도 변경으로 인해 이런 관행이 없어지게 됐다. 따라서 실적 등 기업의 내부 사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경영자만이 알고 있으며 그만큼 이들의 매매 동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는 “기업의 단기 순익 전망에 대해 기업 이사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사들은 자기 회사의 순익이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에 미달할 것 같으면 팔고 웃돌 것 같으면 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이사들의 자사주 매수와 매도는 기업들의 순익 전망을 알 수 있는 탁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영진들이 자사주를 매수하는 이유는 경영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단 한 가지 뿐이므로 향후 증시를 전망하는데 유효하지만 자사주를 매도하는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행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 경영진들이 자사주를 파는 이유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결국 내부자 매도 증가는 경영진들의 다양한 필요 때문에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