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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zine

서바이벌 TV의 식상한 웰컴 투 더 정글

'큐' 사인 소리가 들리고 조명이 비춘다. 조명길을 따라 무대로 걸어들어간다. 관객들이 한걸음 디딜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환호성은 힘도 되지만 부담이 더 크다. 그 환호성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내가 1등 하라는 기대감의 표시이기에….

이내 관객의 환호성이 멈추고 노래하길 기다린다. 떨린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 생각없이 즐기겠노라 얘기했지만 괜한 소리다. 정말 살아남고 싶다. 살아남지 못하면 주변의 시선도 창피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느낄 것 같다.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

‘그래, 있는 힘을 다해, 사력을 다해 노래하자.’ ‘나는 살아남겠다. 어떻게든. 그동안의 노래 인생이 헛되지 않을 명품 공연을 꼭 보여줄테다.’
근데 왜 이리 연습할 때보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나 모르겠다. 연습 때만큼만 하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오른 어느 가수의 심정은 즐기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노래를 한다. 보는 사람 마음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노래 줄타기로 빠져든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표격이 된 ‘나는 가수다’가 꽤 열풍인가보다. ‘나가수’의 폭발력은 상당히 묵직하다. 어디 카페나 술집을 들어가도 ‘나가수’ 음악이 흘러나오고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나가수 이후 TV는 서바이벌 경쟁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살아남겠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그전에 ‘슈퍼스타K’도 있었으나 오디션이 아닌 정통파 가수들의 서바이벌 무대이고 주말 오락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이니 그 영향력은 비교하기도 뭐하다.
이젠 가요 프로그램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서바이벌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잠시 거품이든, 감춰진 인간의 본능이 살아나서든 걱정스러울 정도가 돼 간다.

살아남으려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이기도 하다. 인간 역시 살기 위해, 이기기 위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야 했고, 경쟁에서 밀려난 문명은 그대로 흡수돼 왔다. 본능을 밑바닥부터 처절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흘러왔다.

21세기 환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1등에 대한 강박은 더욱 심해졌다. 어느 분야든 1등을 하지 못하면 사장되는 경우가 흔하다. 잘되는 곳은 항상 인파로 바글바글하고, 심지어 신화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 빌게이츠니, 스티브잡스니 하는 인터넷 기술 문화의 창시자들은 이미 그들의 사소한 한마디조차 신화의 한 장면으로 빗대어진다.

1등에 대한 이야기가 허구든, 진실이든, 부풀려졌건 그건 중요치 않다. 그들의 1등 문화와 이야기만 중요할 뿐이다. 약간 뻥 좀 섞이면 어떠한가. 1등하면 그만이지. 1등으로 살아남은 자의 뻥은 그것마저도 관대히 받아들인다.

TV 얘기하다가 너무 많이 돌아왔나. 암튼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의 부흥과 ‘나가수’로 인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후죽순 개편은 1등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수준에 다름 아니다. 1등을 위한 경쟁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뿐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도 몸부림친다. 경쟁에서 쳐지면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 문명을 흡수해왔던 다양한 민족들처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너무도 철저히 수긍하는 모양새다.

나만 이상한건가. 1등만을, 유행만을 따라가는 모방의 행렬이 눈꼴사납다. 결국 1등을 따라가긴커녕 그들 주변에서 신화만 부풀리는 ‘주변인’이 될텐데 그걸 정말로 만족스러워 하는건가.

TV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서바이벌 프로만 ‘단내’가 나도록 곱씹으니 지친다. 다른 맛 좀 보여주면 어디 덧나나. 문화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이 문화 기획자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인거 같은디. 혼자만 1등 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함께 1등 할 수 있는 예능 프로를 짜보는 건 긴장감이 떨어지니 생각조차 해서는 안되는 시도인가.

일찍이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의 나라’는 먹고살기 바쁜 우리 근대화 역사에서 발을 딛기가 힘들었다. 우리 근대사를 더듬어보면 항상 배고픔이 따라다닌다. 이제 배 좀 불러서 문화컨텐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추세긴 하다. 하지만 거품 가득한 한류 열풍이니, 1등을 위한 문화만 판을 치니 결국 문화적 다양성을 원하는 새로운 배고픔이 도래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고통 없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문구는 미덕처럼 받아들인다. 문화의 첨병인 TV는 매번 ‘유행따라 삼만리’에, 처절한 ‘정글의 법칙’부터 들이댄다. 1등보다 패배자를 더욱 많이 만드는 유행이기에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이제 생각 좀 바꿔서 ‘누군가 희생 없이도 함께 잘 살 수 있다’, ‘고통 없이도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문구도 추가해서 문화의 장을 넓혀주는 것도 좋으련만. 함께 잘 사는 꼴은 도저히 눈뜨고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공동출처 : <뒷간상상>http://koosus.tistory.com
그대여! 느리고 진실한 스스로의 삶을 찾아, 새로운 작은 사회를 꿈꾸는 고독의 친구가 됨이 어떨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