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에 대기업들이 당황하고 있다. 믿었던 2MB의 배신에 당황하는 듯 역공도 펴보지만 사태는 더 불리하게 돌아간다. 결국 대기업은 신규 인력 채용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협력업체들과 "소통"해 방안을 찾겠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에 정부도 비판 수위를 낮추고 언론도 숨죽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남발된 립서비스와 흥분한 군중심리만 남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빌붙지 않고는 살 수 없고, 대기업의 순환 출자가 아무런 제지없이 이뤄지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수없이 절망한 기업가들의 눈물은 닦이지 않고 미래의 청년실업가들은 또 바위를 맨 손으로 깨려하다 쓸쓸히 사라질 뿐이다.
"소통"을 가장 중요히 여긴다는 정부는 중소기업의 중요한 의견에는 귀를 닫은 채 자신들이 챙길 정치적 이득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내쫓겠다던 국회의원은 그냥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친서민정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기, 수도요금을 올리겠다는 발표뿐이다.
우리나라의 친대기업 정책은 2MB정부의 특징이 아니다. 산업화가 추진된 박정희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한번도 수정된 적이 없다. 출자총액제한을 가지고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나 재벌들이 공격을 한 것은 그것이 '유일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토끼와 호랑이를 같이 넣어둔 동물원과 같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살 방법따윈 없다.
“우리는 삼성에 이렇게 당했다”
일등주의를 표방하는 삼성그룹의 불공정한 행위에 자신들의 꿈이 짓밟혔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인들의 피해 사례를 추적해 공개한다.
“그동안 상품 일등하는 데만 신경을 바짝 쓰다 보니까 삼성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대해져가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지난 2월7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백한 내용이다.이회장은 당시 8천억원의 사재를 사회에 헌납한다고 발표하면서 이제는 삼성이 중소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발전해가겠노라고 다짐했다.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요즘 삼성은 얼마나 변했을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과 협력하거나 거래하다가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눈물과 한숨이 그치지 않고 있다.이들은 공정위원회로, 경찰로, 검찰로, 법원으로, 언론으로 달려갔다가 ‘삼성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두터운 보호막의 실체만 확인하고 절망했다며 마지막으로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올가을 국정감사장 곳곳에서 이들 피해 중소기업인의 한과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이다.
삼성을 상대해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싸움을 벌이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피눈물과 한은 ‘일등주의 삼성’의 뒤안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시사저널>이 지난 3주일간의 추적 취재를 통해 이 글에 소개하는 다섯 개 중소기업 사장들의 사연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틈만 있으면 직원들에게 강조해온 ‘법보다 도덕 경영’이라는 구호가 아랫목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으나 <시사저널>은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대기업 집단에서 차지하는 선도적 위상으로 볼 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하루속히 변신해야 한다는 뜻에서 1차적으로 삼성에 의한 중소기업 피해 사례와 분쟁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편집자주).
▒ 디지털네임스 조관현 대표 ‘천지인 자판 기술’ 되찾기
8년 간의 기나긴 전쟁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중소기업 디지털네임스(대표 조관현)는 정보통신 관련 아이디어 특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이다.이 회사 조관현 대표는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애니콜에 사용하는 ‘천지인 자판 기술 특허’를 도용해갔다고 주장하며 8년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내가 20대에 삼성과 분쟁이 발생해서 얼마 뒤면 40대를 내다보는데 길고도 외로운 특허 싸움을 벌이다 이제 지쳐가고 있다.삼성과 싸운다고 하니 주변 친구도 지인들도 다 떠나고 명예마저 타격을 입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조관현 대표는 그러나 지난 5월 초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삼성과의 애니콜 자판 기술 도용 특허 소송에서 승소했다.아울러 이른바 ‘천지인 자판’으로 삼성이 자체 개발 기술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해온 삼성의 기술 특허는 무효라는 판결을 얻어냈다.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고법 판결은 조사장이 지난 8년간 주변으로부터 ‘돈키호테’ 취급을 받으며 벌여온 외로운 진실 게임에서 거물급 법조인 출신들이 버티고 있는 삼성의 아성을 기적처럼 무너뜨렸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조관현 대표가 삼성전자와 휴대전화 자판 기술 특허 전쟁을 벌이게 된 때는 8년 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조씨는 1996년 한글 창제 원리를 기술적으로 휴대전화 자판에 응용할 수 있는 ‘천지인 자판’을 처음으로 고안한 뒤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이어서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통신표준기술협회(TTA)에 이 자판을 휴대전화 표준 방식으로 선정해달라고 제안했다.이 소식을 듣고 먼저 LG정보통신에서 조씨에게 접근해 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그 와중에 삼성전자측은 상품기획부 소속 하 아무개씨를 조씨에게 보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삼성에 기술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삼성전자에서는 나를 6개월간 찾아다녔다며 천지인 자판 기술을 애니콜 휴대전화에 적용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삼성과 계약하면 이 기술을 국가 표준으로 만들어주고 다른 경쟁 회사들에도 비싸게 팔 생각이라고 설득했다.국내 최고 기업과 계약하면 여러 모로 유리할 것 같아 내가 그러자고 승낙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는 조씨를 스카우트하겠다고까지 제안했지만 그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천지인 자판 기술 사용 계약만 맺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98년 3월11일 조씨는 자신의 기술을 삼성전자가 3년간 2억원에 사용한다는 계약서에 서명 했다.3년 후부터는 시장 반응을 보아가며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으면 상응하는 사용료를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조씨와 계약서를 작성한 삼성전자측에서는 사장이 출타 중이니 다음날 사장 사인을 받아 최종 계약서를 보내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특허 내용과 계약서를 가져간 삼성전자의 태도는 돌변해 있었다.자기네가 이미 출원해놓은 유사한 특허가 있다며 조씨에게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기가 곤란하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기술 특허를 도용당했다는 생각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조씨는 독자적으로 ‘천지인 자판’을 출시했다.조씨의 이 자판은 1999년 봄 특허 등록 허가가 나왔다.그러나 삼성전자도 그 뒤 자기들이 천지인 자판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다며 이 기술을 적용한 휴대전화를 출시해 소비자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결국 조씨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자신의 특허를 도용했다며 9백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냈다.그러자 삼성전자는 조씨의 천지인 기술 특허에 대해 무효 심판 청구 소송으로 맞섰다.1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삼성전자는 조씨에게 서로 합의하자고 종용했다고 한다.조씨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술 특허들을 삼성전자가 사용할 테니 천지인 특허를 삼성이 사용하는 데 이의 제기를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이었다.그러나 조사장은 이를 거부했다.결국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아닌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조씨는 이에 불복해 삼성전자의 특허를 상대로 무효 심판을 다시 제기했다.결국 항소심 법원은 지난 5월 조씨 특허에 손을 들어주고 삼성전자가 낸 한글 자판 특허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삼성 한글 자판 특허는 무효” 판결
분쟁의 핵심은 현재 국내 휴대전화 소비자들에게 인기리에 보급되어 있는 애니콜 한글 자판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이다.삼성전자측은 자신들이 조씨보다 앞선 1995년 이와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 특허 등록했다고 주장했다.삼성이 냈다는 특허 기술은 이른바 ‘스트로크(화살표) 방식 한글 자판’ 기술이다.그러나 특허청에 등록된 삼성전자의 이 유사 특허란 한글 창제 원리인 천지인(ㅣ . ㅡ)대신 스트로크 방식(→,↓ㆍ)이었다.그럼에도 삼성이 시판 중인 애니콜 휴대전화 자판은 조씨가 특허를 낸 천지인 한글 자판 배열과 흡사하다.이 때문에 조씨는 삼성전자가 개인의 독창적 기술을 사용 계약까지 맺고서 파기 한 뒤 도용해갔다고 주장해온 것이다.항소심 재판부는 “이 분쟁의 쟁점은 자음 모음 음소 단위의 출력과 구분 방법에 관한 양측의 기술 사상이 동일한지 여부에 있다”라고 전제하고 “두 발명은 자음과 모음 구분 처리 방법에 관해 대응되는 구성에 차이가 있고 음소 내용도 서로 다르므로 서로 다른 발명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판결했다.이어서 삼성전자의 유사 특허에 대해 고법은 “특허법 42조4항의 규정에 위반되므로 무효가 되어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애니콜 자판을 천지인 개념이라고 일반에 광고해왔다.그러나 삼성측은 수사기관 조사에서 “애니콜 자판은 천지인 방식이 아니고 천지인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조관현 대표는 “삼성이 애니콜 자판을 천지인이라고 광고하지 않고 자기네 스트로크 방식에 의한 휴대전화라고 광고하며 출시했다면 나는 기술을 도용당했다고 의심하지도, 문제 삼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개인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자기네 기술로 둔갑시켜 엄청난 시장 선점을 누린 처사를 보고 이래도 되는가 하는 울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8년간 싸워왔다”라고 말했다.
고법에서 어렵게 이긴 조대표는 아직도 안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소송 과정에서 삼성의 두터운 벽을 절감했기 때문이다.웬만한 국내 로펌은 다 뒤져 부탁했지만 조대표의 소송 맡기를 고사했다.대부분 삼성의 사건을 한두 개씩은 맡고 있고, 삼성을 건드려 보아야 손해볼 일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조대표는 “대법원은 전관예우가 특히 심하다는데 한국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힘 앞에 안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 분쟁의 구체적인 사실 확인과 조씨의 주장에 대한 견해 표명을 요청하자 삼성전자측에서는 “법원에서 분쟁 중인 사건이라 취재를 사양하겠다.대법원에서 잘 대응해 삼성의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라고 말했다.
갑을로 표현되는 계약서가 존재하는 한, 소송으로 시간과 돈을 날려야 하고,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상생'은 이뤄지지 않는다. 힘 센 자에게 몽둥이질을 할 권력이 힘 센 자의 편을 들어버리거나 모른 채 해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힘없는 자들의 비탄 뿐이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기업들이 내놓은 해법은 '고용'이다. 그리고 언론은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않는다. 정부도 입을 닫았다. 이런 얄팍한 상술에 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는지 정말 문제다. 하청업체와 상생하랬더니 자기네 식구 늘리는 것으로 돌리는 기술은 세계 일류다.
계산을 해보자.
현대기아자동차가 신규인력으로 5,000명을 채용하겠단다. 2009년 채용인력이 4,800명이었고, 그 전해는 4,500명을 채용했으니 그냥 자기들이 통상 뽑는 인원보다 조금 더 뽑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신규인력 200명을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2,800만원으로 채용하면 1년간 현대기아자동차가 추가로 '사회적 책임'을 지는데 드는 비용은 4억 8천만원에 불과하다.
한편, 한대에 들어가는 부품가격을 총 10만원을 올려주면 어떨까? 2009년 현대자동차의 판매량은 약 160만대다. 기아자동차를 제외하고도 1,600억원이 협력회사로 들어가고 순이익률을 3%로 계산하면 48억의 이익이 하청회사들에 돌아간다. 기아자동차까지 포함하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2차, 3차 납품업체들에 혜택이 돌아가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된다. 내수시장이 살아날 것이고, 2MB가 그렇게도 원하는 주가 3,000시대에 들어설 수도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의 욕심이다. 대기업이 국가 경제의 모든 이익을 다 가져가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욕심을 방만하게 놔둔 정권의 책임이다. 국회의 무능이 문제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타파할 수단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