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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zine

자살, 현대판 흑사병?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 1위, 낙인 찍혀
50년의 성장 속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 드러나
사회 총체적 위기, ‘어떻게 막을 것인가’


포털사이트에서 자살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당신 곁에 우리가 있어요!’ 라는 커다란 배너가 먼저 뜬다. 이는 최근 각 계층, 각지에서 자살이 빈번해짐에 따라 정부가 나서 각 포털사이트에 퍼지고 있는 각종 자살 사이트와 정보를 차단하고 자살 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여성 3대 사망원인, 남성의 4대 사망원인이 바로 자살로 밝혀져 그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OECD 가입국 중 최고의 자살율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심각한 우리나라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며, 이 문제를 방치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릴 날이 머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자살 수위가 위험 한계치를 넘어선 지는 오래됐다. 지난 5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 아파트 8층에서 평소 우울증을 앓던 A씨(53)가 투신자살했다. 어머니가 투신한 뒤 30분 후쯤 외출에서 돌아온 딸 B씨(28)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잠이 들었으나 이후 엄마의 투신 소식을 듣고 괴로워하다 오후 8시 30분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어 포항지역 유흥업소 여종업원 3명이 월 이자 20~30%에 달하는 살인적 고리대 사채에 못 견뎌 7~10일 사이에 연쇄 자살했다. 지난 8일에는 창원시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한데 이어 이 남자의 전 여자친구와 동거녀가 잇따라 자살을 시도해 한 명이 숨지고 나머지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한류의 토대를 만들었던 탤런트 박용하 씨가 자신의 방에서 자살한 바 있다.

 

연간 1만 2800명 자살, 하루 35명이 스스로…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2008년 기준으로 이미 연간 1만 2800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35명꼴로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는 셈이다. OECD 가입국 중 자살율 1위 국가. 이런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8년 IMF 이후 우리나라는 10년째 자살자 수 성장률이 1위였다. 우리나라의 자살자는 2000년 6437명에서 1만 2800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매년 평균 13%씩 증가한 수치로 해마다 그 증가율이 높아져 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여성의 3대 사망원인에, 남성의 4대 사망원인에 자살이 포함됐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여성의 주요 원인별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자살이 18.7명으로 뇌혈관질환 58.3명, 허혈성 심장질환 23.6명에 이어 사망 3위를 차지했다. 자살은 교통사고(7.7명), 위암(14.6명), 폐암(15.8명), 고혈압성 질환(12.7명)보다 높아 여성 자살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른 OECD 회원국 여성의 자살률은 10만명당 4~8명 수준에 불과한 데 반해 우리나라(18.7명), 일본만 13.2명으로 높았다. 남성의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33.4명으로 뇌혈관 질환(54.7명), 폐암(44.0명), 간암(34.4명) 다음으로 높아 4위를 차지했다. 남성 자살은 교통사고(21.8명)와 위암(27.1명), 간질환(23.3명)보다 높았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자살이 교통사고에 이어 두 번째 사망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노인 자살율이다. 인구 10만명당 55세~64세의 OECD 자살율 평균이 14.5명인데 비해, 한국은 42.7명으로 턱없이 높다. 65~74세부터는 통계를 의심할 정도인데, 81.8명으로 국가 평균(16.3명)에서 한국을 빼고 나면 그 통계치는 하향으로 줄어들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75세이상은 19.3명 한국은 160.4명으로 더욱 심각해진다. 
 

자살, 성인 100명 중 15명이 심각하게 고민

 

이와 함께 최근 이런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15명은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으며 이중 3명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이들의 90% 이상은 1, 2년 전부터 자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조맹제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팀이 전국 12개 병원에서 18세 이상 일반 성인 남녀 6510명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15.2%가 한 번 이상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하려고 구체적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3.3%였으며,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3.2%였다.

자살을 계획하고 시도한 응답자는 2%인 반면 충동적인 자살 시도는 1.2%로 조사됐다. 자살 계획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2배가량 많았으며, 자살을 시도한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약 50% 정도 높았다. 자살을 시도한 이유로는 가족 간 갈등, 경제적 문제, 별거 및 이혼, 질병 등 순으로 집계됐다.

 

자살 이유,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경제적 양극화 

우리나라의 자살 이유는 매우 다양하며, 계층별로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자살이유에 대해 ▲지나친 경쟁 중심 사회 속에서 ▲엘리트 ▲유학 ▲우울증 ▲연예인 모방자살 ▲일자리 문제와 ▲교육 ▲외모 ▲50년간 한국의 급속한 성장 뒤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 ▲취약한 사회복지 시스템 ▲자극적인 언론보도 ▲타인에게 최상의 이미지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 ▲성공에 대한 압박감 ▲이에 미치지 못하는 욕망과 현실의 괴리 등이 극단적인 포기(자살)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쟁심은 한국인들이 미국 명문대학에 많이 입학하고 한국이 꾸준히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압박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10만명당 22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자살의 직접적 동기로는 염세ㆍ비관이 46.5%(3만 1002명)로 가장 높았고, 병고 22.4%(1만 4906), 치정ㆍ실연ㆍ부정 8.3%(5524), 정신이상 6.4%(4225), 가정불화 6.2%(4130), 빈곤 4.5%(3019) 사업실패 3.0%(2018), 낙망 2.7%(1,830) 순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자살의 경우 여러 가지 주변문제가 자신과 부딪히면서 충동적으로 결행하는 즉각반응형 자살이 많았다. 그러나 노인의 자살은 사회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 55세부터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이는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BBC는 한국이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경제적 양극화가 원인이며, 우리 정부와 한국 사회가 질병과 가난, 고령화 시대애 대한 준비가 부족한 데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분석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자살율, 그 중에서 노인의 자살율은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일명 사회, 경제적 고려장인 셈이다. 

이와 함께 기초 수급자 160만 명, 빈곤층 650만 명(인구 대비 14.8%), 200만 명 대학졸업 누적 실업자, 200만 명 실직 가장, 700만 명 비정규직 직업자, 200만 명 독거노인, 행복지수 OECD국가 중 최하위 등의 통계수치들을 보면 비교적 정확한 분석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암담한 현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고 이런 현상들은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도 심화될 전망이다.

 

정부,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책  

정부는 2013년까지 자살 사망률을 20명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해부터 광역자치단체에 정신보건센터를 설치해 심리적으로 불안한 국민을 상담 치료하는 제2차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한국자살예방협회는 또다시 인터넷을 통한 동반자살이 유행처럼 빈번히 발생하고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로 인한 충동, 모방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을 우려, 3개 기관이 함께 적극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지난 2009년 사이버 명예경찰 제3기 누리캅스를 대상으로 자살 유해정보 신고대회를 개최, 유해정보 8341건을 발견, 포털 등에 신고한 바 있다. 이어 12일부터 25일까지 제4기 누리캅스(884명)와 협조, 제 2회 인터넷 자살 유해정보 신고대회를 실시하고 있다. 발견된 자살 유해정보에 대해서는 한국자살예방협회에 통보해 지속 관리하고, 필요시 해당 포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삭제, 폐쇄를 요청하는 한편 자살방조. 독극물 판매 등 명백한 현행법 위반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수사를 착수하는 등 단속도 병행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신고된 자살 위험자에 대한 예방 및 구호를 위해 전국 경찰관서와 163개 광역.지역 정신 보건센터를 연계, 24시간 무료 상담을 지원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할 경우 사례관리 매뉴얼에 따라 방문, 내소, 전화 상담 등을 통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예방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관련 기관들은 자살 유해정보를 차단하고 건전한 인터넷 환경조성을 위해서는 정부나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포털의 모니터링 강화 등 자정 노력과 함께 인터넷을 사용하는 네티즌들의 각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살은 정부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대책을 세운다고 예방할 수 있는게 아니며 인터넷에 떠도는 자살 정보를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살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보다는 자살에 대한 흥미 위주의 보도가 난무하고 있으며, 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해 해결방안을 내세우는 정부의 대책조차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공론화를 통해 자살 방지를 위한 사회전방위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철학·정부·언론 등 각계, 사회 공론화가 절실 

우리나라 자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의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을 국민 합의 하에 세워나가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고 시설을 확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 많은 성과를 있었지만, 경제 침체로 인해 이런 노력들이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복지 정책은 많았지만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무현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고 이를 분배하는 형식의 정책을 폈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이명박정부에 들어서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는 양극화해소를 위한 대책과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 차기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적 합의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나가는 사회적 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성장, 성공 위주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노력한 것은 경제적인 부만을 추구하는 과오를 낳았다.

잘 살되 바르게 사는 것을 배우고, 나누는 것을 힘쓰는 것을 추구했어야 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에 모든 초점을 뒀다. 이런 잘못된 가치관이 부동산 투기, 도박, 그리고 사교육 열풍, 전국의 성매매 단지화 등의 질병들을 키워왔고, 온갖 부조리와 병폐 속에서 자살율 1위 국가가 되고 말았다.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철학적 사상적 기초를 놓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 안전망 구축이다. 사회 안전망은 복지정책을 통해 구축돼야 하는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보다 큰 비중을 두고 먼 미래를 보고 꾸준하게 추진을 해나가야 한다. 단지 복지시설을 늘리고 사람을 수용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시설을 늘리고 확대해 가는, 사회안전망의 질적인 완비가 중요하다.

자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정신과적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자살을 쉽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자신을 스스로 치유해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신 건강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청소년들은 입시 위주의 숨 막히는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과 정서 치료 차원의 문화 활동 등을 대폭 늘리고, 노년층 같은 경우도 노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시설, 스포츠 시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들을 대폭 확충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들의 사회 활동, 직업 활동을 늘려갈 수 있도록 다각도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언론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바로 자살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다. 인터넷 등의 매체가 자살을 부추기고, 언론에서 이를 대서특필하는 것들은 자살율을 오히려 높인다. 연예인 등 유명한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자기도 죽고자 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증폭된다.

그리고 자살에 대해 자꾸 듣다보면 자살이 일상적인 것이 되도록 의식화가 된다. 어떤 제품을 계속 선전하면 그 제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 제품을 무감각적으로 구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자살이나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해서 보도하는 것을 자제하고,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명예롭게 내세우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