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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zine

나꼼수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60년 4.19 혁명을 전후했던 시절의 한 시골 초등학교. 이 학교의 5학년 중에는 엄석대라는 학급 내 절대 권력이 존재한다. 타고난 힘으로 아이들을 위협하며, 성적도 좋아 담임의 신임도 절대적이다. 담임과도 거의 동급 권력을 갖고 있는 엄석대에게 반 아이들은 밉보이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반 아이들은 그와 그의 추종 세력의 보복이 두려워 반항하려는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던 중 한병태라는 인물이 서울에서 전학을 온다. 병태는 이런 석대의 비상식적인 권력남용에 반기를 든다. 하지만 단 6개월 뿐이었다. 게으른 5학년 담임은 오히려 저항하는 병태를 문제아로 낙인 찍고, 석대가 끊임없이 회유하고 괴롭히자 그만 자신이 갖고 있던 상식과 합리성을 꺾고 만다. 그러자 석대는 한풀 꺾인 병태를 자신의 심복처럼 끌어안고 살갑게 대한다.

하지만 6학년이 되면서 합리적인 의식을 가진 담임이 학급에 새로 부임하면서 엄석대의 아성은 점점 무너진다. 그가 공부를 잘 했던 것도 비리에 의해 성적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다. 석대의 비리가 계속 나오고 권력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반 아이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렇게도 석대에게 줄을 서던 아이들이었다. 병태는 그런 변화들을 그저 지켜만 본다. 그러던 중 석대는 학교에서조차 쫓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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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얘기다. 고교 시절 읽었던 이문열의 가슴을 울리던 소설 중 하나였다. 아쉽게도 고교 시절까지가 이문열에 대한 동경의 끝이었지만….
이문열의 이야기는 우리 정치권이 해왔던 그간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큰 들에서 보면 이 소설 속 이야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매주 정치 소설을 쓰고 있는 각하 헌정 방송 ‘나는 꼼수다’에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야기를 한다. 작은 인터넷 골방 방송이 이제 정권 비판의 메인급 영향력을 발휘하는 본격 코믹 정권 까대기 만담으로 자리잡고 있다. 메인 방송이 됐다고 해도 막상 들어보면 술집에서 친구들과 정부 욕 실컷 하는데 거기에 약간의 디테일한 정보와 자료들로 신빙성을 보태는 수준이다.

김어준 총수는 자신의 예상대로 MB 정권의 꼼수가 드러나고 있다고 매번 흥분한다. 나꼼수에 출연하는 기자나 전 국회의원, 목사 아들도 그럴 줄 알았다고 맞장구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정치 예지력을 가진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MB 정권에서 자행하는 일들을 보면 이문열 소설과 비교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초딩 엄석대 수준의 순진한 권력 장악 꼼수를 쓰니 바로바로 걸려든다. 나는 꼼수다 패널들이 강조하며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그냥 뻔히 보인다. 이제는 꼼수라기보다 말썽 많은 초등학생 수준의 발상으로 정국을 끌어가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역대 정권 사상 가장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된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비서관 회의 때 말한 내용이란다. 얼마나 황망하고 재미있나. BBK 의혹이니, 내곡동 사저 의혹이니, 이래저래 나오는 꼼수가 잘못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데 본인만 모른다고 잡아땐다.

그나마 부각시키는 도덕성의 근거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월급을 전액 기부했다는 것에 있다. 눈에 보이는 몇 억짜리 월급 기부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온갖 비리쯤은 눈감아 달라는 것인지…. 참으로 초딩답다. 현 정부 수준이 이 정도니 ‘나꼼수’의 분석이 철저하지 않아도 정부 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있던 사람이라면 공감대를 형성한다.

뭐 이문열 소설을 벗어나지 않는 초딩 정권 얘기는 이쯤하자. 그보다 괜히 노파심이 드는 건 권력의 비상식에 저항하고 반 아이들의 이성을 깨우려 했던 병태, 나꼼수이다. 남 욕만큼 신나고 재미있는 게 어딨나. 스케일만 크고 문제점이 수두룩한 북한산 자락 아저씨 앞담화로 만족하려고 하나. 무턱대고 까대기만 하면 괜히 꼼수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뭔가 잘못됐다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어떤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분석해서 말해줬으면 한다.

노파심 하나 더. 전 국회의원이 패널로 있는 만큼 어쩐지 병태처럼 권력에 동화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농담 삼아 방송에선 자기 자랑을 ‘깔대기’라고 웃어넘기지만 ‘말빨’ 좋은 정치인이 방송을 타고 국회 입성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건 그닥 좋아보이지 않는다.
패널로 출연하는 기자 역시 대단한 취재를 한 것처럼 떠받드는 것도 껄끄럽다. 아무리 우리나라 언론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도 비리 몇 가지 캐낸 것으로 주목받는 건 일선 기자들에게 좋은 영향만 준다고 볼 순 없다.

그렇다고 나꼼수가 병태처럼 권력에 동화될 것 같진 않다. 총수를 믿는다. 메인이 되니 주변에서 말들이 많아져 귀찮겠지만 병태처럼 되는 걸 원하진 않을 게다. 잘못된 것을 상기시켜주는 정도 했으면 충분히 고생했다. 거기다 청취자와 함께 하는 대안도 얘기해주면 더할 나위 없다.

결국 모든 것을 바로 잡는 것은 병태가 아니라 담임 선생이다. 게으르고 떠넘기기만 했던 5학년 담임이 아닌 합리적인 성품의 새학년 담임이 나타나야 한다. 그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새학년의 담임은 누구일까?

바로 당신이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권력이라는 것을 아는 당신이다. 이제 다가오는 새학년을 맞아, 쫄지 않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당신이다. 벌써부터 당신과 함께 권력의 꼼수에서 벗어나 대안을 얘기하는 새학년이 기다려진다. 졸라~

공동출처 : <뒷간상상>http://koosus.tistory.com
그대여! 느리고 진실한 스스로의 삶을 찾아, 새로운 작은 사회를 꿈꾸는 고독의 친구가 됨이 어떨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