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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zine

<바보만들기>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근대화 교육의 역사는 프러시아에서부터 시작됐다. 국가주의에 근거한 사회 통합을 강화하던 시기의 교육을 말한다. 이는 미국에서도 빌려왔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모방됐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근대화 교육이 그대로 흡수됐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는 근대화 교육이 뿌리내리는 과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럼 우리나라 근대화 교육 과정을 잠시 돌아보자.
대화와 타협을 찾아볼 수 있나. 관용과 배려, 균형과 조화, 이성적 비판과 타협, 진실에 대한 끝없는 추구 등등…. 지난 20세기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 이같은 구절을 볼 수 있을까. 너무도 추상적인 용어들을 실천한 이는 몇이나 있을까. 


군이 통제하는 국가의 절대적 권력 앞에서 대화를 요구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관용과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림도 없었다. 이성적 비판은 금기사항이었다. 진실은 숨겨지는 것이 미덕이었다. 교육도 국가의 지시에 따르면 그만이었다.


배운 건 국정 교과서, 영어사전, 칠판 글씨를 외우고 시험만 잘 보면 끝이다. ‘공부가 가장 쉽다’고 했던 어느 고학생의 얘기가 이해되기도 한다. 얼마나 쉬운가. 보고 외우기만 하면 되는데….


당시 양육강식의 세계 질서에서 국가의 앞날이 오늘 내일 하는데 획일적인 교육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화 교육의 허상은 21세기에도 그대로 투영돼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아직도 양육강식의 논리가 통하긴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교육은 그 자리다.   


몇 해 전 미국 뉴욕의 고교 교사인 '존 테일러 개토'(76)라는 칠순이 넘은 미국 교사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92년 <바보만들기>라는 책을 내고 미국의 획일적 교육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개토는 이 책에서 근대화 교육이 담겨있는 경쟁 위주의 학교 교육이 사실상 ‘바보 만들기’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30여 년 동안 뉴욕에서 교사 생활을 해 오면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생기를
잃어버리고 가능성을 매장 당한 현실이 안타깝다.
어른이 돼서도 사회에 길들여져 밥벌이나 하는 상황이다.
학교 교육을 더 잘 받은 엘리트일수록 실제로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고 산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봉사하는지 알지 못한 채 물신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


그는 교육 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바보’를 만들어내는 교육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 잘 듣는 아이를 길러내는 근대화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의 근본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토의 얘기를 들으니 잠시 만났던 칠순을 바라보던 노(老) 교육자의 말이 겹쳐진다. 그는 자신을 '교육계 돌연변이'로 소개하면서 '정답 없는 교육'을 강조했다. 점수따기 경쟁이 교육의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학교와 학생, 교사의 자율에 맡겨 소신껏 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가 들수록 지식보다 지혜가 쌓인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몇 마디 지식을 억지로 구겨 넣으려고만 하기보다 어르신들의 깊은 지혜를 가르쳐줬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욕심일까.


공동출처 : <뒷간상상>http://koosus.tistory.com
그대여! 느리고 진실한 스스로의 삶을 찾아, 새로운 작은 사회를 꿈꾸는 고독의 친구가 됨이 어떨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