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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zine

<지붕킥> 어느 산골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붕뚫고 하이킥’이 끝났다. 드라마에 관심이 없던 내게 드라마와 시트콤, 코미디, 철학의 장르 경계를 허물고 상호 소통의 단계를 성찰하게 해준 또 다른 형태의 극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잠시 유적의 시기와 맞물려 함께 했던 극이기도 하다.


처음 시작은 1회 때 세경이 시골에서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시작됐고, 세경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대사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해피엔딩을 바라진 않았지만 뭔가 답답한 심정이 억누른다. 굳이 지훈과 세경의 ‘사고사’를 암시했어야 했는지, 그럼 남은 가족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어느 산골 소녀의 성장기는 결국 슬픈 자화상만을 남겨야 했는지 많은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이 시트콤의 결말을 두고 말들이 많다. ‘내가 만약 PD 였다면 그냥 즐겁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시트콤다운 시트콤으로 만들었을텐데’ 라는 의견이 대다수로 보인다.


이 시트콤의 PD는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간파라도 했는지 정음이 준혁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에서 ‘만약~했다면’으로 마무리한다. 

“그러고 보니까, 이 맘 때구나. 지훈씨랑 세경씨. 지금도 생각해. 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세경씨를 만나지 않고 바래다주지 않았더라면…” 등등.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과 같이 푸념섞인 한마디를 흘린다.


세경과 지훈, 둘 사이의 그 순간 감정보다 그들의 주변 가족들은 좀 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익한 방향으로 ‘만약’을 애써 사용한다. 순재네 가족의 등장인물 성격상 가족 대부분의 반응도 굳이 장면을 만들지 않아도 어떤 푸념을 할 지 보인다.

“쟤는 뭐하러 공항까지 바래다주느냐고!!”, “앞날이 창창한 녀석이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가족한테 비수를 꽂냐고!!”, “언니는 왜 지훈 아저씨를 보고 온다고 해서….” 등등. 


물론 ‘죽음까지 암시를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은 나부터도 그렇다. 세경이라는 인물이 그동안 밝게 살려 애쓰고, 주위에 피해주지 않으려 하고,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까지 해 온 가엾은 소녀였기에 더욱 안타깝다. 지훈 역시 앞날이 창창한데 좀 밝게 마무리할 수 없었을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동안 극에서 다뤄왔던 많은 사회적 이슈와 가족애, 풍자적인 요소보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이라고 넋두리하는 한 산골 소녀의 사랑 감정이 이 드라마 PD에겐 무엇보다 소중했다보다.


극의 결말을 놓고 시청자들의 ‘만약에’ 라는 푸념과 비판, 분노가 들끓을 것이란 걸 알고도 산골 소녀의 사랑 감정을 마지막 엔딩에서 시공간의 초월적 사랑으로까지 남겨놨으니 말이다.


세경이 비오는 차 안에서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흡사 이 극의 PD가 말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세경은 지훈과 대화에서 떠나는 이유와 남고 싶은 이유를 조곤조곤 풀어놓는다.

“아빠랑 같이 살고도 싶고, 또 하나는 언젠가부터 신애가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 그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여기 남아서 신분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제 밑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요”라고 떠나는 이유를 덤덤히 밝힌다.


그리고 남고 싶은 이유로 지훈을 좋아해서였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비참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마음에 담아 둔 말들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올지 모르지만 늘 지금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왔나요? 아쉽네요. 이렇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세경은 가족이 함께 살길 바랐고, 또 신분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가족이 쪼그라들지 않길 바라면서 떠나려했다. 이는 PD가 현대 사회의 돈과 직업적 명분 등으로 인한 신분 격차의 낙인에 대한 비관을 털어놓는 독백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경은 사랑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다. 이는 PD가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다른 어떤 조건과 낙인이 세상을 어지럽혀도 행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다.  


이 극의 PD는 일단 지훈과 세경의 대화를 통해 산골 소녀의 사랑 감정을 극의 중심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풀어내지 않은 나머지 얘기는 세경이 말했듯 ‘시간을 잠시 멈춰두고’, 시청자들이 ‘만약 내가 극을 만들었다면 ~했을텐데’라는 각자 상상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결말은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다양하게 그려질 수 있기에 어떤 얘기든 오르내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세경을 ‘저승사자’, ‘귀신’, ‘지옥에서 온 식모’ 등으로 부르는가 하면 ‘세경의 꿈속 일이다’, ‘시즌2에서는 지훈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등의 갖가지 끼워맞추기식 얘기가 난무한다. 순수한 사랑과 고백이 짓밟히는 처참한 순간이다.


어떤 추측과 억측이 떠돌던 이거 하나만은 마음속에 새겨줬으면 한다. 어느 이름 모를 산골소녀의 슬프고 순수한 사랑 얘기가 이 어지러운 사회가 바라는 기대와 낙인찍기보다 더욱 가치 있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란 것을….

공동출처 : <뒷간상상>http://koos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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