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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zine

접속사 랩소디 - '그런데' 실종사건의 전말

글쓰기에서 지나친 접속사 쓰기는 금물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배우는 주의사항 중 하나다. 좀 많이 쓰면 뭐가 나쁠까. 내용이 일목요연하지 않고 군더더기만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들 단어에도 나름 생명력이 있을진데 너무 무심하게 글쓰기 세계에서 왕따만 시킨 건 아닐지. 아무리 군더더기 취급을 받아도 그들 나름대로 올바른 쓰임새를 가지고 탄생 했을터. 그들이 웅성거린다. ‘나도 좀 써 주쇼!’
그들의 웅성거림으로 인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접속사 마을에 ‘그래서’란 청년이 산다. 아버지는 ‘그러므로’, 어머니는 ‘따라서’다. 할아버지는 ‘그리하야’이고, 할머니는 ‘이리하여’이다. 사촌 중에는 유일한 유학파인 ‘그렇기 때문에’가 있다.
‘그래서’의 집안은 접속사 마을에서 결과 위주의 일을 한다. 원인은 보통 뒷전이다. ‘태초에 결과가 있었다’가 가훈이다. 할아버지는 몇 일전 집안사람들을 모아놓고 가훈에 대해 훈계한 적이 있다.
“우리 집안은 항상 뭔 일든 결과를 찾아 댕기는 집안이여. 우리 시조께서도 ‘결과 나무’에서 열매를 잘못 먹는 바람에 결과 추궁을 당하셨지. 우리 집안은 결과의 뿌리에서 바로 서는 거여. 알아들었지?”
“그럼 계속해서 이야기 헌다. 그리하야~ (1시간 일장 연설)”
‘그리하야’ 할아버지는 입만 열면 1시간이 기본이다. ‘이리하여’ 할머니가 한마디라도 보태는 날이면 하루가 그냥 다 간다. 훈계를 듣다보면 결과 자체가 더욱 미궁 속에 빠지기 일쑤다.

같은 접속사 마을에는 ‘그러나’란 아가씨도 산다. 아버지는 ‘그렇지만’, 엄마는 ‘하지만’이다. ‘그런데’가 오빠다. 사촌으로 ‘근데’가 있다.
‘그러나’ 집안은 ‘그래서’ 집안보다 단촐해도 엄격함이 있다. 누가 입만 열면 반대부터 하는 엄한 집안이다. 함부로 입 열었다간 “그렇지만~”으로 시작되는 말로 인해 말문이 막힌다. 매번 다양한 생각들이 가득하다. 결론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훈련받아왔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렇지 않아도’의 가르침을 이어오고 있다.

한 마을이지만 ‘그래서’와 ‘그러나’ 집안은 서로 말을 잘 섞지 않는다. 사실 집안끼리 만날 일도 없었다. 글쓰기 세계에서 이들이 이어지는 일은 서툰 필자를 만날 경우에만 생긴다. 멀리 떨어져서도 말만 하면 다툼이 생긴다. ‘그래서’가 ‘그러나’에게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 ‘그러나’는 “어쩌라기보다도 그러나~”라고 말바꾸기를 되풀이 한다. ‘그래서’와 ‘그러나’는 서로 호감이 있다가도 입만 열면 싸움판이다.

어느 날, 다툼이 끊이지 않는 접속사 마을에 실종사건이 일어났다.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런데’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사촌동생 ‘근데’는 요새 온라인 게임방에서 자주 보였지만 ‘그런데’는 언젠가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실종사건을 다루기 위해 ‘만약에’ 형사가 수사에 나섰다. 넘겨짚기 일쑤인 이 형사는 우선 실종 원인으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로 인해 ‘그런데’가 도피한 것은 아닌가하는 추리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사촌동생 ‘근데’에게 물어도 요새 게임방에서만 놀기 때문에 형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만 한다.

약에’는 다른 방향의 추리도 한다. ‘그런데’가 혹시 ‘그래서’와 ‘그러나’ 집안의 다툼으로 인해 중간에서 실종된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데’는 ‘그래서’와 ‘그러나’의 중간쯤 이다. 애매한 그의 입장으로 인해 ‘그런데’가 중간에 끼기라도 하면 더욱 심한 다툼이 일어났다. 그런 다툼 과정에서 혹여 사고를 당하진 않았겠냐는 추리다.

또 하나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좌우지당간에’다. ‘좌우지당간에’는 이들 마을의 폭력조직 두목이다. 조직 식구로 ‘하여간에’, ‘어쨌든간에’, ‘암튼’, ‘여튼’ 등이 있다. 이들은 말다툼이라도 생길라치면 “좌우지당간에~”로 말을 시작하며 모든 상황을 종결 시켜버린다.
‘그래서’와 ‘그러나’ 집안이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는 순간에도 ‘좌우지당간에’가 나서면 끝이다. 이들로서는 ‘좌우지당간에’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무런 정보나 지식없이 “좌우지당간에~”로 밀어붙이니 막막하다. 소문에 의하면 ‘좌우지당간에’는 접속사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에서도 당해낼 자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에’ 역시 ‘좌우지당간에’를 수사하기엔 너무 역부족이었다.

‘만약에’ 형사는 마지막으로 ‘그리고’를 찾았다. ‘그리고’는 항상 여운을 남기는 존재다. 말이 짧아 마을에서 미운털이 박힌 ‘또’가 형제다. ‘더구나’, ‘하물며’도 가까운 친척이다. ‘그리고’의 막무가내 연결하기로 인해 ‘그래서’ 집안과 ‘그러나’ 집안은 가끔 합의점을 찾을 때도 있었다. ‘만약에’ 형사는 ‘그리고’의 터무니없는 연결짓기 버릇도 ‘그런데’를 해칠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용의선상에 올렸다.

‘만약에’ 형사는 세 가지 용의 단서를 가지고 ‘그런데’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고 접속사 마을 방송을 통해 알렸다.
방송을 본 마을 사람들은 ‘만약에’의 넘겨짚기 수사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만약에’만 모를 뿐 누구나 ‘그런데’가 실종된 이유를 대충 알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인 ‘좌우지당간에’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종사건의 실마리는 엉뚱하게도 사촌동생인 ‘근데’에게 있었다. ‘근데’와 전라도 사촌인 ‘근디’가 형인 ‘그런데’를 게임방 구석에 가둬놓은 것이다. 너무 길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그래서’와 ‘그러나’, ‘그리고’ 집안에서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좌우지당간에’조차 조직을 ‘여튼’에게 조금씩 잠식당하던 중이다. ‘글구’와 외국계 ‘벗(but)’, ‘근데’, ‘근디’, ‘암튼’, ‘여튼’ 등은 게임방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위해 집안사람들을 조금씩 감금하고 있었다.

접속사 마을은 이제 제 이름을 잃고 짧아지기만 하고 있다. 다툼은 많았으나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접속사 마을은 혈통을 잃어가고 있었다. ‘만약에’만 위험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종사건의 전말은 ‘만약에’ 형사의 잘못된 판단, 그의 보조형사 ‘설마’의 눈치보기로 인해 사건이 결국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와 ‘그러나’, ‘그리고’ 집안의 접속사 마을 잔혹사는 이제 막 시작된 서막에 불과한 것일 수도….

공동출처 : <뒷간상상>http://koos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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